[지금 식박은?] 한일회담을 이해하기 위한 질문들을 통해 전시를 소개합니다!

2025-12-19

8dd885c739296.png

을사늑약 120년‧한일협정 60년 기획전

1965, 망각에 가둔 과거 - 부정에 맞선 질문들

- 한일회담을 이해하기 위한 질문들을 통해 전시를 소개합니다!

b631a65b6eb25.png

Q1. 갈등의 시작은 어디였을까요?

A. 1951년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를 위한 조약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조약은 일본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책임을 제대로 추궁하지 않았으며, 한국은 조약 서명국에서 조차 제외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었고, 모든 문제는 ‘재산 및 청구권’을 정리하는 양자 협상으로 축소되었습니다. 또한 분리 영토에 ‘독도’가 포함되지 않아 영토 분쟁의 불씨가 남았습니다. 

57890ded5b2db.png

Q2. 해방된 한국은 일본에 무엇을 요구했을까요?


1. 한국에서 가져간 고서적, 미술품...을 반환할 것.

5. 한국 법인 또는 한국 자연인의 일본국 또는 일본 국민에 대한 일본 국채·공채, 일본은행권, 피징용 한인 미수금, 기타 청구권을 변제할 것.

-「대일 8항목 청구 요강 요약」 (제1차 한일회담 청구권위원회 1차 회합, 1952.2.20.) 


A. 정부 수립 직후 한국은 식민지배로 인한 피해를 묻는 포괄적 ‘배상안’을 준비했습니다. 1949년 작성된 “대일배상요구조서”에는 현물과 금전적 피해, 강제동원 등 인적, 물적 피해는 물론, 강제공출 등의 저가 수탈 피해 배상까지 포함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배상안’은 미국의 확고한 대일 ‘무배상’ 원칙 강화와 한국의 샌프란시스코 서명국 참가가 좌절된 이후 ‘대일 8항목 청구 요강’으로 대폭 축소됩니다.

b7d5965bb120b.png

Q3. 한국의 요구에 일본은 어떻게 압박했나요?


“일본의 36년간 한국 통치가 한국 국민에게 유익한 것이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일본은 한국에 철도를 건설하고 항구를 건설했으며 농지를 조성했다.” 

- 제3차 한일회담 당시 구보타 간이치로 대표 발언


A. 일본은 한국의 요구에 대해 한반도에 남겨진 일본인 사유재산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역청구권’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1953년 제3차 회담 일본측 수석대표 구보타 간이치로는 ‘식민 지배가 합법이었고 한국에 이익을 주었다’는 망언을 합니다. 

8bb0ae56918fd.png

오늘 소개해드린 질문을 포함해, 전시에서는 총 8가지 질문을 통해 한일협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2026년 2월까지 진행하는 기획전시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62591f7a50de1.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