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역사의 증인이다][강제동원 뉴스레터 #피해자의 목소리] 그리운 오빠, 남대현

남대현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42년경 일본 군대에 끌려갔습니다. 귀한 아들이 전쟁터에 끌려가자 어머니는 앓아 눕고 집안은 온통 난리가 났습니다. 해방이 되고 남대현씨와 같이 끌려간 두 명은 살아 돌아왔지만, 남대현씨는 돌아오지 못했고 소식조차 가족들에게 전해지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없으니 식음을 전폐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1946년에 돌아가시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모두 남대현씨의 소식을 듣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오빠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나선 것은 여동생 남영주씨였습니다.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이하 ‘보추협’)의 도움으로 2003년 남영주씨는 남대현씨의 기록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남대현씨는 남양군도로 징집되어, 1944년 8월 10일 뉴기니의 야카무르에서 총에 맞아 전사한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남영주씨는 보추협의 도움을 받아 2006년 일본 후생노동성에 또 다른 남대현씨의 기록을 찾았습니다. 소속부대와 전사일, 공탁금 액수 등이 적혀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유골에 관한 기록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보다 기가막힌 사실은 일본이 해방 14년 후인 1959년 4월 6일 남대현씨를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한 것이었습니다. 가족들에게 사망 통지서조차 보내지 않고, 군국주의의 상징이자 전쟁을 미화하고 침략을 정당화하는 야스쿠니 신사에 남대현씨를 무단으로 합사한 것입니다. 여동생 남영주씨는 이 사실을 알고 유골을 찾는 것은 당장 어렵더라도 야스쿠니 신사에서 오빠의 이름을 빼내고 영혼을 하루 빨리 해방시켜주고 싶은 마음으로 일본 정부와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해방 8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남대현씨는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 이름으로 합사되어 있습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가족들은 여전히 해방되지 못한 채 식민지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위 내용은 2014년 남영주씨의 법정진술서 등을 토대로 구성한 내용이며, 사진은 남영주씨가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기증한 오빠 남대현씨의 사진으로 현재 박물관 상설전시실에 원본을 전시 중이다. 

* 법정진술서는 하단 원문을 참고해주시기 바라며, 남영주씨가 일본 시민들과 연대하여 뉴기니를 방문하는 내용은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을, 더 자세한 이야기는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증언집 '빼앗긴 어버이를 그리며'>을 참고해주시기 바란다.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증언집 '빼앗긴 어버이를 그리며'